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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의 행복

INTERPRETATION OF STUTTERING 말더듬의 해석

INTERPRETATION OF STUTTERING

말더듬의 해석

2. 상징의 해석

우리가 가진 오류와 허구들을 알게될 지라도

그러한 오류와 허구들은 여전히 일상을 지배하는 힘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 Barry Smith

비록 당신이 생전 복권 한 장 사본 적 없는 사람일지라도 간밤에 돼지꿈을 꾸었다면 복권을 사러가게 되거나 사지는 않더라도 ‘한 번 사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돼지꿈을 꾸면 자동적으로 복권당첨과 같은 금전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주변에 돼지꿈을 꾸고 복권당첨이 된 사람이 있었거나 TV등의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당첨자의 인터뷰 등을 통한 직간접적인 과거경험 때문일 수도 있고 우리 민족에서 흘러나오는 집단적 무의식에 의한 것일 수도 있으며 작년 1억 이상의 복권 당첨자들 중 26.3%가 돼지꿈을 꾸었다는 설문조사에 의한 확률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근거가 무엇이든 간에 나를 포함한 우리들 대부분은 돼지꿈을 자연스럽게 복권당첨과 같은 금전운과 관련시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왜 돼지꿈을 꾸고 나서 왜 돼지꿈을 꾸었는지를 생각하거나 돼지꿈을 다른 꿈들처럼 그저 개꿈이려니 하고 치부해버리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왜 그 꿈으로 인해 특정한 미래를 예상하고 그로인해 현재의 행동을 변화시키게 되는 걸까?

이쯤에서 누군가는 ‘말더듬의 해석’이라고 해서 말더듬 관련 글 인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왜 자꾸 이상한 얘기만 하냐고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이야기는 이 글의 제목인 ‘말더듬의 해석’에서 말더듬보다는 해석과 관련된 것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 이 글은 사실 말더듬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말더듬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관점에 관한 이야기이며 실질적으로 말더듬 자체를 다루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말을 더듬는 이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며 이 글을 다 읽을 수 있다면 말더듬뿐만 아니라 더 큰 변화도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아무튼 돼지꿈 이야기를 계속하면 사실 돼지꿈 자체가 복권에 당첨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돼지꿈을 꾸었다 하더라도 이를 자신의 무의식에 의한 것으로 여기고 이를 해석하려고 했다면 혹은 돼지꿈을 꾸었지만 그걸 개꿈으로 여기고 복권을 사지 않았다면 복권에 당첨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없어서 복권을 사지 못한다면 이들 역시 복권에 당첨되지 않을 것이다. 돼지꿈을 복권에 당첨되는 미래를 말해주는 상징이라고 해석하는 것만으로 복권에 당첨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돼지꿈을 꾸고 복권에 당첨되는 이들은 이러한 미래에 대한 해석을 통해 현재의 행동을 변화시킨 이들이다. 이처럼 미래의 변화는 현재의 행동에 의해 나타나게 되지만 이는 실질적으로 현재의 자신이 자신의 현재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하는 것에 달린 것이다.

물론 돼지꿈을 꾼 우리들은 이를 자동적으로 미래의 복권당첨과 같은 금전운에 관한 상징으로 해석하지만 일상속에서 우리가 이처럼 어떠한 사건을 바로 미래에 대한 어떤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대개 과거의 어떤 일이 현재의 일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한다. 과거의 어떤 일이 원인이 되어 현재의 이러한 결과가 생겼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위의 경우도 대개는 그냥 돼지꿈을 꾸었기 때문에 복권에 당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돼지꿈이라는 동일한 현상을 가지고도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돼지꿈을 현재의 사건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사건은 과거의 원인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꿈을 꾸게 된 원인을 과거로부터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전날에 TV에서 본 돼지 때문이라든가 다른 이에게서 자신이 돼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든가 하는 것이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현재의 사건인 돼지꿈 자체를 해석하는 것에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으로 복권당첨을 설명할 수는 없다. 돼지꿈을 해석하려면 미래라는 원인이 현재라는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복권에 당첨되는 미래가 현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완전한 해석이 될 수 없다. 돼지꿈을 꾼다고 해서 모두가 복권을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돼지꿈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과정이 필요하게 된다. 물론 우리들 대부분은 돼지꿈을 복권당첨으로 자연스럽게 해석하겠지만 일부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 그저 다른 꿈들처럼 생각해버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의 차이는 행동의 차이로 나타나게 되며 이러한 행동의 차이는 결국 미래의 차이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는 동일한 상징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해석의 차이와 그로 인한 행동변화를 통해 미래의 차이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위에 언급된 상징의 경우는 복권 당첨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상징을 해석하였기에 그 결과를 통해 해석에 대해 판단할 수 있으나 사실 대부분의 해석은 그 자체로는 판단이 불가능하며 어떠한 판단을 내렸다 하더라도 그것에 잘잘못이나 선과 악을 따질 수는 없다. 상징은 늘 모호한 형태로 남아있으며 우리는 각자가 가진 ‘해석기’를 통해 이를 해석할 뿐이다. 해석 자체만으로는 늘 고유의 상태로 남아있을 뿐이다. 다만 이를 통한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미래의 자신은 과거의 해석에 대해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조차도 끊임없이 변하고 진화하는 미래의 자신이 바라본 것이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그 해석은 끊임없이 변하게 된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다가 몸살감기에 걸려 꼼짝 못하게 된 경우 처음에는 일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몸살감기를 일을 방해하는 요소로 해석하다가 나중에는 너무 열심히 했기에 몸이 휴식을 요청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결국 과거는 영원히 동일한 과거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며 현재의 자신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변하는 모호한 상징으로 영원히 남아있게 된다. 물론 과거에 벌어진 일은, 과거에 있었던 물질적인 현상 자체는 역사로서 변함없이 남아있지만 우리는 이를 현재의 자신이 가진 ‘해석기’에 비추어 바라봄으로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자신의 ‘해석기’에 맞춰 과거라는 모호한 상징을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조차도 상징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인류는 미래를 생각하는 존재이며 이러한 미래는 실질적으로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인식을 하는 ‘해석기’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미래이면서 현재이고 또한 과거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생각해 낸 미래는 현재와 과거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상징의 세계에 살고 있고 이 세계는 상징의 해석을 통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의미를 더해가는 세계이다.

인간은 각자 고유의 ‘선천적이고 후천적인 해석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로 인해 동일한 시공간에 함께 존재하며 동일한 사건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해석기’의 차이로 인해 각기 다른 경험을 가지게 된다. 인간이 가지는 실질적인 차이는 바로 이 ‘해석기’의 차이이며 이 차이로 인해 우리는 실질적으로 각기 다른 세상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상징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이러한 ‘해석기’의 차이로 우리는 동일한 상징도 다르게 해석하게 된다. 인간이 자신을 인식하고 세상을 인식하는 것은 이 ‘해석기’를 통해서 가능하며 이 ‘해석기’가 인식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것이다. 우리는 진화를 통해 발전된 뇌를 통해 선천적인 해석기를 가지며 이 선천적인 해석기는 문화, 사회, 경험 등 환경의 영향을 받아 끊임없이 후천적인 수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수정의 과정은 자발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물론 타인 혹은 사건이 영향을 미치기는 하나 이러한 사건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해석기’를 통해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처음의 의도와는 다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의도했던 그대로의 변화를 타인의 ‘해석기’에 불러일으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 뇌에 대한 연구의 발달로 가능해질 수 있겠지만 그 시점이면 아마도 인류의 ‘해석기’는 진실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수준에 다다를 것이다. 이러기에 우리는 타인의 ‘해석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 물론 자극을 변화시킴으로서 반응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 이러한 ‘해석기’의 수정은 자발적인 과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인식을 통해 - 대개는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 우리는 우리 자신의 ‘해석기’를 인식할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을 포함한 이 상징 세계를 끊임없이 재해석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해석기’를 수정해 나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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